[김화진 칼럼] 착한기업은 민주주의에 나쁜가
[김화진 칼럼] 착한기업은 민주주의에 나쁜가
  • 시사24
  • 승인 2021.09.2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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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News1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전 세계적 현상인 양극화의 원인을 대기업의 성장에서 찾기도 한다. 대기업에 투자하고 대기업에서 일하고 대기업과 거래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풍요롭고 그 범주에서 소외되면 척박하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코로나로 더 분명해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재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는다.

대기업은 정부보다 훨씬 효율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정부의 기능을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는 전쟁조차 전문기업들이 하청을 받아 수행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떤 정부도 독자적으로 코로나 백신을 11개월 만에 내놓지 못한다. 정부가 대기업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다양한 지원책, 필요하면 구제금융까지 해준다.

반면, 양극화가 발생시키는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증세와 대기업에 대한 규제강화 카드를 쓴다. 독점규제와 공정거래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가 글로벌 이념으로 정착되고 있다.

기업이 자본을 투자한 주주들의 이익뿐 아니라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도 배려해서 경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생각은 오래된 것이지만 그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은 클라우스 슈밥 교수다. 다보스포럼의 창시자이자 의장인 바로 그 슈밥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슈밥은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전반적으로 ‘친기업’적인 학자다. 규제가 철폐되고 세금부담이 낮아져야 기업이 이해관계자를 배려할 여력이 생긴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부가 기업을 다면적으로 지원하면 기업의 실적이 증가하고 이는 고용과 세수의 확충으로 연결된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조엘 베이칸 교수는 ‘신기업’(The New Corporation)이라는 책의 제목에 ‘착한기업은 민주주의에 해롭다’는 부제를 붙여놓았다. ESG가 경제력 집중을 오히려 심화시켜 양극화와 불공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 텍사스 주 윌리엄스 카운티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세제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있다. 공장 유치에 성공해서 경제와 고용이 개선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지만 그 효용은 아무래도 제한적인 사람들에게 나누어지는 반면 세금은 보편적인 용도에 사용되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결정은 현지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이 주도해서 내려지므로 새로 들어서는 공장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장기적인 지역경제의 활성화가 예상된다 해도 민주주의 이념과 이론적인 긴장이 발생한다.

ESG가 신자유주의와 일맥상통한다면 매우 모순이다. 그러나 미국 재계가 ESG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속은 없다는 보고가 종종 나오고 있고 반면에 감세와 (환경과 노동)규제완화는 실효적으로 논의되고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2019년에 미국 200대 기업 경영자들이 이해관계자 이익도 배려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아직 정관을 개정한 기업이 없다. 법률이 그대로여서다. 우리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기업의 이사회는 주주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현행법이다. 이념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은 정부보다 효율적이다. 효율적이고 생래적으로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바뀌는 순간 자동 소멸해버리는 특이한 유기체다. 착할 수는 있지만 효율성을 ‘착함’과 맞바꾸지는 못하도록 설계된 존재다.

ESG는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여기에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베이칸 교수는 ESG를 통로로 정치가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순간 기업의 역량과 영향력이 커져서 민주주의가 약화되는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흔히 ‘기업’과 ‘사회’로 대비시켜 말하지만 사실은 ‘기업에 속한 사람들’과 ‘그외의 사람들’이다. 소수인 전자가 특혜를 받아 다수인 후자를 보살핀다는 설정은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는 아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지만 결국 곳간 주인의 마음에 달렸다.

차제에 ESG를 EG로 했으면 한다. G는 오랜 학술연구로 검증된 것이고. E는 기후변화에 대한 체감으로 전지구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반면 S는 정치와 분리하기 어렵고 복잡한 순환논리의 위험이 있어서 이념으로는 좋으나 행동준칙으로는 적합하지 못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100년이 넘게 논의되어 왔지만 아직도 법률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증거다. 1919년 미국 미시간주 대법원 판결이 “회사도 자선이나 기타 사회사업을 위한 지출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지출을 함에 있어서는 일정한 장기적인 사업상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요즘의 ESG 이념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